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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Sony a 65

폭설 속에서 피어나는 새싹

by monoday 2014. 7. 10.



원재훈 시인의 [폭설 속에서]


폭설이 내리면 길이 사라진다
붉은 신호등 아래,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는 사람들
습관적으로 저 횡단보도를 건너고,
폭설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을지라도
내가 여기에 있고, 네가 거기에 있으니
서로 조심하게 된다
얼어붙은 빙판 2차선 도로 위에서
항상 씽씽 달리던 자유로에서
폭설 때문에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살면서, 가면서, 사랑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된다
가끔씩 응급차가 요란한 싸이렌 울리면서
내 앞을 지나가면, 항상 몇 백 미터 앞에는 뒤집힌 차량들
불과 몇 분전의 상황과는 다른 것이 삶이라는 것을
혹독한 폭설 속에서는 희미하게 보인다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저 늙은 노새같은 스노우 타이어
차창을 부수고 튀어나온 여자의 피묻은 가는 손목,
그 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의 약속은 이제 폭설 속에서 사라져 간다

폭설 속에서 아주 천천히 걸음마를 하듯이 운전을 하면
하나, 둘, 사라지는 집들,
눈에 덮였지만, 분명히 저기에서 흐르고 있는 강물,
평소에 보았던 것들을 다짐하듯이 보게 된다

깜빡거리면서 마을의 불빛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덮어버린 지상의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이불을 덮고, 과일을 먹고, 연인을 기다리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던 그 모든 것들이
분명히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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